"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스스로 결정한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오랜 구호가 이제 현실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면서, 특히 '개인예산제'가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장애인 단체에 따르면, 올해부터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이 전국 17개 지역으로 확대된다. 이는 기존 활동지원서비스 외에 다양한 장애인 지원 서비스를 통합하여 개인이 직접 예산을 관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그동안 장애인 복지 서비스는 정부나 지자체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제공되어, 개인의 실제적인 필요와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개인예산제는 이러한 '획일적'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권리 기반' 접근법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컨대,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했던 중증 장애인이 개인예산제를 통해 활동지원과 보조기기 구입 예산을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이와 함께 정부는 최중증 장애인 대상의 의료집중형 거주시설을 시범 도입하며 24시간 의료지원을 강화하는 등, 장애 유형 및 정도에 따른 맞춤형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탈시설'과 '자립'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최중증 장애인에게도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장애인 복지시설 거주자 중 52%가 장애인인 현실에서 학대 예방과 자립 지원의 공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장애인복지시설 외 다른 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또한, 장애인 고용률이 3%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다. 1조원 매출 기업조차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며, 장애인 취업률은 여전히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 역시 지속적인 논쟁거리다. 최근 국회에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전부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법적, 제도적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저상버스 도입과 같은 물리적 접근성은 물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복지가 단순히 '시혜'가 아닌 '권리'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예산제와 같은 새로운 시도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변화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장애인이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더 깊고 폭넓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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